슬슬 공기가 축축해지고 있었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꽃잎들이 길거리를 온통 덮고 있었고, 그 꽃잎들이 원래 있었던 자리를 초록빛 나뭇잎들이 채워내고 있었다. 원래 꽃은 봄에만 살 수 있는 법. 그 이상 꽃이 버텨보려 한다면, 무시 못할 더위에 말라 죽거나 매서운 추위에 얼어 죽는다. 그래서 난 여름이 싫었다. 꽃이 피어나는건 좋았지만, 지는건 죽어도 싫었으니까. 한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던 존재가 검게 썩어들어가 길거리에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나뒹구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런데 지금, 봄이 지고 여름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 없어. 여름이 되면, 꽃은 지고 마니까. 팔랑거리는 꽃잎 하나가 뺨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너와 똑 닮은 분홍빛 벚꽃잎이. 참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네. 잠시 동안만, 하루만이라도 봄을 더 늘릴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늦었지만 사랑했어, 히로."
뺨에 내려 앉았던 꽃잎은 거뭇거뭇하게 변했고, 꽃이 차갑게 내 품에서 식어갔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짦은 올해의 봄이 다시 한번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