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neshots

[쿠로른 + 오이른] 세계와 너

*이메레스 백업입니다!



"세계가 전부 적이어도 너를 지킨다." 

리에쿠로


‘쿠로상.’

‘쿠로사아앙~~’

‘쿠로오오오상!!’


왜 이딴 거지같은 타이밍에 네 목소리가 생각나는걸까.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잇새로 피식 새어나왔다. 이제 아무것도 없는 빈 하늘을 올려다보다 네가 생각나 버린 거겠지. 


상황은 정말로 거지 같았다. 제3소대, 코드네임 네코마 전멸 추측. 생존자가 남아있다 해도, 전부 끊겨버린 무전에 행방불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적군 수뇌부 중앙에 묶여 있는 제3소대의 리더, 쿠로오 테츠로. 희망은 전혀 없었다.


파란 하늘을 보면 항상 그가 생각나곤 했다. 눈치도 없고 기술력도 현저히 떨어지는 팀내의 막내지만, 근거없는 자신감을 들이밀며 어찌저찌 팀에게 희망이 되어주곤 했던 존재. 살아있을까, 죽었을까.괜히 이런저런 잡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을텐데 어떻게 죽어야 멋있게 죽었다 소문이 날까... 혀 깨물고 죽어버릴까?


“쿠로오사앙!!!”


어?


이젠 붉게 물들어버린 은발이 여름 바람, 파란 하늘 아래 휘날렸다. 이번엔 헛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 지어졌다.




"네가 세계의 전부다, 너를 지킨다."

보쿠로


“쿠로오,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할거야아~?”

“엑, 그게 뭔 소리야.”

“빨리 답해봐, 어떻게 할건데.”


버튼이 풀어헤쳐진 교복 셔츠와 느슨하게 매인 넥타이.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아이스를 먹는 두 소년은 눈이 멀도록 새파란 여름 하늘 아래 갇혀 있었다.


“몰라.”


둘 중 검은 머리의 소년이 아이스를 그대로 입에 문채로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모의고사의 잃어버린 답안지를 찾듯이 초점 잃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그였다.


“그게 끝~???”


미지근한 대답에 속이 상했는지, 흰 머리의 소년이 고개를 홱 돌려 아직도 하늘만을 바라보는 다른 소년을 째려보았다. 


“아이스 녹는다, 바보부엉이.”

“으으읍-!?”


무심하게 막대 아이스를 그의 입안에 쑤셔 넣어주었다. 뭔 소리를 하는거야. 네가 죽는다니. 


내 하늘이 되어주는 네가 없다면, 내가 살아갈 이유도 없잖아. 내 우주, 내 세계, 내 전부.




"네가 지키는 세계를 지킨다."

이와오이

“이...이와쨩 미쳤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의 목소리다. 고교 마지막 3학년의 춘고때도, 난 오이카와가 저리 무너져 내리는걸 보지 못했다. 언제나 위풍당당한 풍채가 가득했던 그의 깊은 갈색 눈동자는 이제 초점을 잃은 채 하염없이 흔들리고만 있고, 여유가 넘쳤던 미소는 없어진지 오래였다.

무너져가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이젠 내가 그에게 미소 지어주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려댔지만. 꽉 쥔 주먹의 마디마디가 핏기를 잃고 허옇게 변해갔다. 평소라면 못생겼다 타박을 줬을텐데.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서 난 그저 이유없는 웃음만을 지어줄수밖에 없었다.

“그래, 미쳤지 내가.”

다리엔 이제 더 이상 감각이 들지가 않았다. 척추를 따라 생경하게도 아픔이 찌르르 올라오는것이 느껴져, 겨우 입술을 이로 짓이겨 신음을 목구멍 아래로 내리 삼켰다. 붉게 변하게는 시야가 석양 덕인지, 아니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 덕인지 구분이 가지가 않았다.

“살아, 오이카와. 죽을 각오로 살아.”

흔들리는 그의 동공을 마지막으로 담아내며, 내 시야는 흐려졌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세상을 위해, 난 모든걸 바쳤다. 친구로써, 그의 연인으로써, 희망으로써.



"세계가 전부 적인 너는 네가 죽인다."
마츠오이


총성이 귓가에 얼얼하게 울리며 탄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기를 반으로 갈랐다. 그럼에도 한점 흔들리지 않는 자세와 표정. 그것 하나만은 정말 인정할수밖에 없다.


“맛층 실력은 여전하네~?”

“이 바닥에서 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돼. 너도 해놓는게 좋을텐데.”


표적을 향해 겨눠졌던 마츠카와의 권총은 이제 오이카와의 손안에서 휙휙 돌려지고 있었다. 풀어헤친 셔츠와 목에 겨우 걸쳐져 있는 넥타이. 누가 봐도 편한 자세다.


“글쎄, 난 사람 죽이는 취미는 없어서.”


어언 이 대저택에서 탈출하려 한지 3개월 째. 하지만 밥먹듯이 해본 탈출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자신의 손에 쥐여져있는 권총, 전혀 무방비 한것 같은 마츠카와, 그리고 완벽한 자세. 천천히 오른손을 그를 향해 올렸다. 난 너같이 사람 죽이는 취미는 없지만, 나 살려면 사람 한명 쯤은 거뜬히 죽일수 있거든. 방아쇠를 움켜진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토오루, 사람들이 날 죽이려하고, 혐오하고, 싫어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야. 뒤지기 싫으면 얌전히 있으라고 내가 똑똑히 말한것 같은데.”


권총은 어느샌가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세계가 전부 적이어도 상관없다 너는 내가 죽인다."
우시오이

지랄맞게 싫다. 저 눈치없는 말투가, 소름 끼치도록 낮은 목소리가. 너의 모든 부분이, 아니, 존재부터가 환멸스러워. 

“죽어버려, 제발 죽어줘.”

그의 목을 부여잡은 내 양손이 기괴하게 떨려댔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잔인한 감각이 너무나도 생경하게 내 모든 신경 세포들을 뎅뎅 울려댔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힘이 들어간다면 넌 죽을 텐데.

“오이카와.”
“닥쳐!!!”

내가 피를 삼키고 하는 노력을 넌 모르잖아. 너 따위를 한번이라도 이겨보려고, 내가 얼마나 등신짓을 하는지 모르잖아. 네가 그토록 쉽게 얻는 세계의 사랑을, 난 맛만이라도 한번 보려고 얼마나 개같이 기는지 넌 죽어도 모르잖아. 그딴 존재인 네가, 날 이해할수 있을리가 없잖아. 어차피온 세계가 싫어하는 나, 더 미움 받아봤자잖아. 

“오이카와, 넌 길을 잘못 들었다.”
“마지막으로 할말이 그딴 쓰레기 밖에 없어?”

무심하게 날 내려다 보는 널 지금 이 순간이라도 찢어 죽이고 난 지옥에 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넌 절대 모르겠지. 



"네가 지키는 세계를 부순다."

켄쿠로


난 어릴적부터 쿠로오가 신기했다. 딱히 동경이라 할순 없었지만, 콕 집어 말해야 한다면 연구원이 실험체를 보는것 같이라고 해야 될까.


그는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다. 어릴 적에 같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쿠로오만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지만, 그는 울거나 아픔을 표현하는 대신 날 먼저 걱정해 주었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쿠로오 테츠로란 사람은 절대 불만을 표하는 법이 없다. 마치 온 세상이 자기편인듯. 누군가 아무리 무리인 부탁을 해도, 눈 밖에 나가도, 결국엔 부탁을 다 들어주고 마는 그다. 그런 그가 난 지금까지도 신기했다. 18년을 같이 보냈는데도이해가 안돼. 게임 매뉴얼엔 그런게 없단말이야. 어차피 인간은 다 이기적이지 않아? 넌 도데체 세상에서 뭘 보길래 그토록 사랑과 애정을 쏟아부을수 있는거

냐고. 


고양이는 궁금한게 있으면 즉각 해답을찾아내려 한다는 말을 책에서 읽어본적이있다. 뾰족한 녹안이 위험하게 빛난다.


자, 네가 그토록 애정하는 세상을, 나를, 네 세상의 전부인 나를 너에게서 앗아간다면 넌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까.

 

'onesho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선시뉴] 여름날의 기억  (0) 2017.02.06
[마츠하나] 배덕의 미학  (0) 2017.02.01
[오이쿠니] 흔적  (0) 2017.01.25